우리는 항상 있음과 없음에 시달리고 산다. 내가 있고 없음에 시달린다. 존재가치에 대한 시달림이다. 또한 돈이 있고 없음에 시달린다. 물질에 대한 시달림이요. 욕심에 대한 시달림이다. 또 건강이 있고 없음에 대하여 시달리고 산다. 이는 힘의 유지에 대한 바램에서 시작된 시달림이다. 가족관계에 시달린다. 이는 자신의 좁은 인연을 유지하려는 부대낌의 모습들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태어나서 왕성하게 자라고, 그 왕성함은 외부의 환경과 힘에 영향을 받아서 병들고 사그라지면서 죽어간다. 세상의 이치는 여기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어떤 화려한 꽃도 다 지며, 강렬했던 태양계도 그 삶을 다하면 그 빛과 광명을 잃게 된다. 다 사라지고 없어지고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있는 것은 다 사라지고 외부를 만나 변화하는 것이 진리이며, 그 변화를 거부할때 고통은 시작된다. 병듦이 문제가 아니라 그 병듦을 인정하지 않는것이 문제이며, 이것이 고통이다. 욕심은 있음을 계속 증가하려고 하는 것에서 일어나고, 물질을 양산하려는 물욕에서 일어난다. 끝없는 플러스만 좋아할 뿐 마이너스는 인정하고 싶지 않는데서 기인한다.
과학자들은 플러스의 끝은 마이너스임을 알아냈다. 결국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같음을 아는 인식이 바로 명상인 것이며, 진리인 것이다. 그것은 외부가 내부가 되고, 내부는 외부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함께 함'이며, '더불어 사는 것'이며, '있음 속 없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 강명희 법사님의 '2018년 여름집중수련 자연명상' 강의 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