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

제목수행의 출발은 왜 대승이어야 하는가?2020-01-15 21:10
작성자 Level 8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 당대의 부처님이 직접 설한 교설과 그의 제제의 교설을 의미하며,

부처님 열반 후에 부처님 교설의 내용을 해석한 논서의 내용을 의미하며,

부처님 교설을 중생 속에서 확대하여 펼쳐진 대승 불교 전반을 의미한다.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결정적 차이는' 자신'과 '타인'이라는 두 축에서 결정된다.


소승불교는 존재하는 '나'와 '나의 심리'는 원래 비어 있는 '공'이며

원래 나가 없는 '무아'이며 원래 변화를 겪는 '무상'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소승불교가 놓친 것이 있었으니,'나'는 무수하게 괸계되는 '너' 또는'대상'또는

'객관계'와 연결되어 있으며 수많은 너를 인정하고 수 많은 너와 함께 해야만 완성된다는 것이다.


대승불교는 이미 나는 너와 연결되어 있어서 너와 함께 함에서 출발한다.

대승의 불보살은 고정적인 나의 물질도 없고 고정적인 나의 직업도 있을 수 없고

고정적인 지식과 생각이 있을 수 없고, 나의 몸도 있을 수 없고 고정적인 삶도

없다는 것을 지금 바로 앞에 있는 너에서 실천한다. 그래서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

선언하면서 수 많은 너는 나에게 수용될 수 밖에 없음을 역설한다.


대승의 '대()'는 헤아릴 수 없는 중생계를 의미하며 헤아릴 수 없는 불보살의 큰 마음을

의미하며, 중생과 함께 해야만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하는 진리의 위대함을 의미한다.

대승의 '승()'은 그러한 불보살의 마음의 품에 모든 중생은 올라타 진리로 향하는 대승열차를

의미한다. 대승열차는 마음이 배고픈 중생, 마음이 무거운 중생, 현실이 가난한 중생,

현실에서 역경을 겪는 중생, 몸이 아픈 중생 등 우리들이 현실에서 늘 보고 겪는 모든 사람들과

6도를 윤회하는 모든 유정물과 무정물을 태운다.


대승의 불보살은 자신만의 이상을 향하여 자신만 진리를 향하여 자신만 깨달음을 향하여

가길 거부한다. 자신 만을 위해서는 갈 이유가 없다.

자리(自利)는 이타(利他)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대승의 수행도 이와 다르지 않다.

대승을 닦는 수행자는 자신의 마음만을 닦는 것은 수행이 아니라고 한다.

이미 나는 수많은 너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수많은 너로 인하여 생각하고 번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승 수행의 출발은 나와 관계된 수많은 너를 수용하겠다는 마음가짐에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 역지사지(易地思之)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바로 초발심(初發心)인 것이다. 

 

-  강명희 법사님의 2019년 12월 9일자 능인신문에 게재된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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